강화도에 자리 잡은 한국의 초기 교회
개항기 시절, 인천은 선진 문물이 꼭 지나쳐 오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한국에 개신교가 들어온 것 역시 인천을 통해서 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인천, 특히 강화도에는 종교와 관련된 유산이 많습니다.
강화군에 위치한 온수리 성공회 성당(인천 유형문화재 52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길38번길 14)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온수리 성공회 성당은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교회양식을 보여주는 건축유산으로 1906년 영국인 주교 조마가(Mark. N. Trollope)가 지었으며, 성안드레아 성당이라고도 불립니다.
독특한 건축 양식
강화군에는 잘 알려진 성공회 성당이 두 곳 있습니다. 1900년에 지어진 성공회 강화 성당(사적 제424호, 성 베드로와 바우로 성당)과 온수리 성공회 성당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두 장소 모두 한국의 건축 양식을 수용한 건축물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온수리 성공회 성당은 외관까지 완벽한 한옥 양식을 갖추어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온수리 성공회 성당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문루(종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루는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을 말합니다. 문루에는 실제로 종이 설치되어 있으며 지금도 저녁 6시마다 종이 울립니다. 한편, 최초에는 서양식 종이 설치되었으나 일제에 빼앗긴 이후 우리나라 전통양식의 종으로 교체하였다고 합니다.
건축물은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지만 내부는 서유럽 교회 건축 양식있습니다. 온수리 성공회 성당과 일반 한옥과의 큰 차이는 입구의 위치입니다. 일반적으로 한옥은 넓은 폭이 정면이며, 입구는 정면에 위치합니다. 그러나 온수리 성공회 성당은 좁은 면에 문이 있고 넓은 측면에는 문이 없습니다. 긴 구조인 바실리카 양식으로 성당이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전통기와로 덮흰 지방과 팔작지붕인 처마, 용마루 끝에 세워진 십자가가 아니라면 성당으로 생각하지 못할 모습입니다. 한편, 본당 건물은 본래 목조 건물이었으나 부식이 심해 보수할 당시 나무를 내구성이 강한 조적조로 변형하였습니다. 또한 손으로 쓴 것 같은 온수리 성공회의 ‘성안드레성당’이라는 목간판에서도 아주 이색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공회 온수리성당은 평신도들의 기부와 헌금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1910년 기준 전국 성공회 교회의 37.5%가 강화도에 있었다고 하니 그 인기가 대단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당 내부 벽에는 과거의 모습을 알 수 있는 흑백사진들과 의상, 촛대들이 마치 박물관처럼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옥 성당 안의 샹들리에 조명도 이색적인 모습입니다. 한쪽에는 온수리 성공회 성당의 기념자석, 책갈피 기념품을 무인판매합니다. 구매를 원하면 헌금함에 비용을 넣고가면 됩니다.
이외에도 솟을 대문 아래에 있는 강화 온수리 성공회 사제관이 있습니다. 사제관은 성공회 초대 선교사 고요한 주교와 함께 영국에서 온 조마가 신부가 1898년에 건축한 건물입니다. 지금의 건물은 1933년 원형 그대로 중수한 것입니다. 사제관은 ㄷ자형 벽돌 구조인 5량 4간의 홑집으로 영국인 신부가 한국 전통 주거에 어떻게 적응하였는지 알 수 있는 가치 높은 건축물로,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4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온수리 성당에서 시작하는 강화도 여행
현장에 가보면 바로 옆에 2004년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 위치해 있습니다. 현재 운영하는 강화도 온수리 성공회 성당입니다. 성당에서 약 1km에는 천년사찰인 전등사가 있고 강화나들길 3코스(16.2km, 성공회 온수성당-길정저수지-이규보묘-석릉-가릉)에 있어 주변 관광지를 함께 둘러보길 추천합니다. 성당 바로 앞에 규모가 작은 무료 주차장이 있고 근처의 온수공영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온수리 성공회 성당 외에도 강화도에는 개항기와 대한제국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관광지가 많습니다. 근대 개신교의 흔적과 개항까지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인천광역시 강화군으로 떠나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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